박지욱의 영화 속 의학 : 폭격(The Bombardment : The Shadow in My Eye, 2021)

기자명 더메디컬 편집부 (you@themedical.kr)
박지욱 신경과 전문의
박지욱 신경과 전문의

영국군 오폭의 참상 고발한 영화 ‘폭격’

1945년 나치 독일 점령하의 덴마크의 시골, 결혼식 하객들을 태운 택시가 영국 공군의 폭격을 받는다. 지나가던 소년 헨리가 참상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아 (폭격기가 날아오는) 하늘만 보면 겁에 질린다. 병원에도 가보았지만 의사는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걸린 어린 소년에게 “정신 똑바로 차려!”라며 고함치고 윽박지르기만 한다(의사 맞아요?). 의사의 충격요법 때문에 더 큰 상처를 입은 불쌍한 소년은 아예 말문을 닫아버린다. 엄마는 헨리를 괴벤하운(코펜하겐)에 있는 이모집으로 보낸다. 번화한 도심이라면 하늘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촌동생인 리그모어와 친구인 에바는 상처받은 헨리가 두려움을 이겨내도록 돌봐 주며 학교에도 같이 나간다.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던 어느 날 아침, 학교에 영국 공군 폭격기가 추락한다.

테레사 수녀는 이 학교에서 일한다. 그녀는 전쟁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신은 왜 가만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신의 존재를 의심한 그녀는 불경한 행동을 저질러 신의 벌을 받을 작정을 한다. 그런 자신이 벌을 받는 것으로 신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길 원한다. 하지만 그녀의 도발에 마음이 움직인 것은 신이 아니라 청년 프레데릭이었다. 프레데릭은 나치가 점령한 덴마크에서 게슈타포의 앞잡이로 일하는 조직인 히포에 소속돼 있었다. 히포는 저항군 세력을 색출하고 고문하고 분쇄하기 위해 비인간적인 만행을 서슴지 않는다.

한편 영국 공군은 괴벤하운에 있는 게슈타포의 본부를 공습하는 <카르타고 작전>을 준비했다. 전쟁은 막바지였지만 게슈타포는 덴마크 저항조직을 분쇄하기 위한 거의 막바지 준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1945년 3월 21일 19대의 폭격기와 30대의 호위기들이 영국을 이륙했다. 3개 조로 나뉜 폭격기 편대는 세 번에 걸친 공격으로 본부를 초토화시킬 작정이었다. 하지만 제1조가 공격하던 중 폭격기 한 대가 본부와 1.5km 떨어진 ‘여학교’에 추락한다. 헨리, 리그모어, 에바, 그리고 테레사 수녀가 있는 바로 그 학교다.

폭격기의 추락으로 학교는 화염에 휩싸이고 교사들은 아이들을 서둘러 지하로 대피시킨다. 하지만 2조와 3조의 폭격기들이 화염에 휩싸인 학교 건물을 폭격 목표인 게슈타포 본부로 오인하여 이곳에 폭탄세례를 퍼부었다.

 

‘폭격’ 영화 포스터.
‘폭격’ 영화 포스터.

게슈타포 공격한다며 학교에 폭탄 투하

카르타고 작전(Operation Carthage)으로 불린 이 공습은 표면적으로는 대성공이었다. 1조의 나머지 폭격기 5대가 정확히 임무를 수행한 덕분이다. 게슈타포 본부는 대파되고, 저항조직 관련 자료들도 날아갔다. 동시에 나치 게슈타포 55명과 덴마크인 부역자 47명이 죽었다. 갇혀 있던 저항군 18명도 탈출에 성공했다. 이 폭격으로 덴마크에서 게슈타포의 저항조직 탄압활동은 분쇄되었다. 하지만 인간 방패로 잡혀 있던 저항군 8명은 목숨을 잃었다.

더 큰 피해는 여학교에서 있었다. 수녀회가 운영하는 잔다르크(여)학교에서는 123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87명은 학생, 10명은 수녀, 4명은 교사였다. 구조 작업 중 소방수 2명과 학부모 2명도 목숨을 잃었다. 더하여 102명의 부상자도 생겼다.

전쟁을 다룬 많은 영화들이 조종사의 관점, 하늘의 관점에서 폭격을 보여준다. 경쾌한 낙하음을 내며 폭탄이 줄지어 떨어지고, 목표점을 타격하는 호쾌한 폭발의 화염과 치솟는 검은 구름이 보인다. 그 폭탄이 비처럼 퍼붓는 지상, 특히 민간인이 거주하는 도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폭탄은 어떻게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는 걸까? 폭탄이 터지면서 나오는 폭발력으로 금속 파편들이 총알처럼 주변으로 발사된다. 그 파편들이 인체와 만나면 몸에 박히기도 하고 몸을 관통하기도 한다. 파편이 몸에 박히면 폭발 에너지가 체내에 남아 큰 부상을 입힌다. 파편이 관통을 한 경우에는 에너지가 몸을 빠져나가므로 오히려 부상이 덜하다. 단 주요 장기를 비껴간 경우에만 그렇다.

피폭 현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일까? 제2차 세계대전 중 런던의 한 무도장에 나치 독일 공군이 투하한 50Kg의 폭탄이 지붕을 뚫고 떨어졌다. 홀에는 연주자와 많은 시민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폭음’을 거의 듣지 못한 채 강력한 섬광과 온 몸을 흔드는 진동으로 폭격을 인식한다. 동시에 숨막히는 먼지 구름이 일면서 전기가 나가 칠흑 같은 어둠이 엄습한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신음 소리, 도움을 구하는 소리, 친구를 찾는 소리, 잔해가 흩어지는 소리가 난다. 앞도 안 보이지만 실내를 가득 메운 매캐한 화약 연기 때문에 사람들은 숨을 쉬기도 어렵다.

폭격과 동시에 즉사한 사망자들은 폭압에 내동댕이쳐지거나, 몸이 두 동강이 나거나, 허리 아래가 없거나, 심지어는 머리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외상 없는 즉사자도 많았다. 이 폭탄 하나로 사망자 34명과 부상자 80명이 생겼다.

개전 초기에 8개월 이상 나치 독일공군의 공습을 받았던 영국은 전세가 역전되자 독일을 폭격하기 시작한다. 군수 산업 시설도 폭격했지만 민간인이 거주하는 도심 폭격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 폭격의 현장을 독일로 옮겨보자.

영화를 보면 폭격기들이 도심 상공에서 탄창을 열어 마구잡이로 폭탄을 투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민간인 피해를 극대화하기 위해 종류가 다른 폭탄을 순서대로 투하했다. 제일 먼저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4천 파운드(1.8톤) 폭탄이 떨어진다. 피폭지는 가루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충격파와 파편으로 주변에 있는 건물의 문, 창문, 지붕 등 외벽 구조물도 날아간다. 도심의 한 블록을 완전히 날려버린다는 의미가 바로 블록버스터다. 그 다음에 떨어지는 것은 파괴력보다는 화재를 목적으로 하는 화염폭탄이다. 창과 지붕이 사라진 건물 안으로 떨어진 폭탄은 집안에 불을 낸다. 집안에서 블록버스터 폭탄에게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몸에 불이 붙는다.

그렇다면 공습 사이렌을 들으면 집 안보다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안전했을까? 그렇지 않다. 폭격을 맞은 거리는 파편과 잔해로 아수라장이 된다. 수도관이 터져 물바다도 된다. 시민들은 폭격과 화재의 중심지를 벗어나 외곽으로 탈출하려고 하지만 길이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 갇혀버린다. 그 위로 화염폭탄이 떨어져 거리가 불붙기 시작하면 엄청난 불길이 치솟고 허리케인 수준의 불폭풍이 일면서 주변의 산소를 다 빨아들인다. 폭탄과 화염을 피한 시민들도 이번에는 질식의 위험에 노출된다.

그렇다면 지하에 있는 방공호는 안전하지 않을까? 물론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듯 방공호가 폭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매몰되는 경우도 있다. 요행으로 방공호가 잘 견뎠다고 해도 거리로 이어진 출구가 무너지면 방공호에 갇혀 질식 당할 위험이 크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공기가 유입되는 상황에서 매몰되었다 해도 이번에는 물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거리와 건물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살포되는 물이 방공호로 흘러 들어와 이번에는 익사할 위험이 생긴다. 심지어는 불로 데워진 펄펄 끓는 물이 매몰자들을 덮치기도 한다.

정리한다면, 폭격 당한 도시의 시민들은 폭사나 화상 같은 위험에 더해 질식, 매몰, 익수 등으로 목숨을 잃는다. 전쟁을 일으킨 지도자들은 안전한 지하벙커에서 전쟁을 지휘했지만 그런 안전한 방공호는 대다수의 시민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영화 ‘폭격’ 엔딩 장면에 나오는 잔다르크학교 기념사진. 이 중 많은 아이들이 영국군의 오폭으로 사망했다. [사진=‘폭격’ 영화 캡처화면]
영화 ‘폭격’ 엔딩 장면에 나오는 잔다르크학교 기념사진. 이 중 많은 아이들이 영국군의 오폭으로 사망했다. [사진=‘폭격’ 영화 캡처화면]

폭격, 우크라이나·가자에선 현재진행형

사실 폭격은 고비용 저효율 즉, 가성비가 낮은 공격 수단이다. 독일인 1명을 죽이는 데 쓴 영국의 폭탄은 평균 3톤이었다. 한편 폭격에 날아가는 폭격기는 수백 대나 되는데 폭격기가 날아가도 1대의 공격으로 사망한 독일인은 평균 3명 정도이다.

그렇다면 영국이나 독일은 군사, 산업 시설이 아닌 시가지를, 엄청난 민간인 피해가 날 수밖에 없는 폭격을 왜 했을까?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입혀 사기를 꺾고 반전 여론을 조성하는 데 주목적이 있다. 하지만 영국이나 독일 시민 모두 폭격으로 사기가 꺾이지 않았다.

이렇게 독일과 영국이 공수를 바꾸어 도심에 무자비한 폭격을 하는 동안 청년과 장년의 남자들이 전방으로 징집된 후방의 도시에서 폭탄 세례를 받은 이들은 무고하고 힘없는 민간인들이 대부분이다. 세기가 바뀐 지금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제아무리 정밀한 공격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해도 목표물과 상관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부수적 피해’는 막지 못한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폭격의 참상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요즘 전쟁은 대규모의 공습 즉, 폭격기나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군 의료 시스템이야 이런 상황을 사전에 대비한다고 쳐도 민간인 부상자들은 어찌 할 것인가? 민간병원이라고 폭격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하면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의 의료체계는 어떨까? 안심해도 될까? 외상외과 의사들을 포함해 당장 수술실에 투입할 수 있는 외과의사들이 얼마나 있을까? 지금처럼 외과를 천시하는 풍조를 방치만 한다면, 일어나면 안 될 ‘특수한 상황’에서 귀중한 인명을 구할 수 있는 의사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영국 공군의 게슈타포 본부 기습 폭격인 카르타고 작전은 성공한 것으로 전쟁사에 기록되었다. 하지만 잔다르크여학교의 무고한 피해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비밀에 부쳐졌다. 학교는 다시 문을 열지 못했고 철거된 후 그 땅에는 아파트가 서 있다. 하지만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 하나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니 코펜하겐 여행자들은 한번 가볼 만한 곳이라 생각한다.

 


◇박지욱

제주에 사는 신경과 개원의이자 작가다. 의학과 문학, 역사의 접점을 찾고 있다. 의학과 문화를 엮는 일을 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최초의 메디컬티스트(medicultist)라 주장한다. 『이름들의 인문학』(반니), 『진료실에 숨은 의학의 역사』(휴머니스트) 등 5권의 책을 펴냈으며 다양한 매체와 방송에서 메디컬티스트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참고문헌

1) 폭격의 역사 / 스벤 린드크비스트 지음 / 김남섭 옮김 / 한겨레신문사 / 2003.

2) 1945년 4월 8일 할버슈타트 공습 / 알렉산더 클루게 지음 / 이호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

3) 공중전과 문학 / W. G. 제발트 지음 / 이경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

4) 어떤 선택의 재검토 / 말콤 글래드웰 지음 / 이영래 옮김 / 김영사 / 2022.

5) 폭격기의 달이 뜨면 / 에릭 라슨 지음 / 이경남 옮김 / 생각의 힘 /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