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훈의 응급실 소크라테스

기자명 더메디컬 편집부 (you@themedical.kr)
곽경훈 분당제생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곽경훈 분당제생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사내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얼마나 마셨는지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당연히 취하지 않은 상태, 그러니까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마무리 짓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자신이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할 수 있는 날은 매달이 아니라 매년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범위에 불과했다.

물론 사내도 처음부터 그런 심각한 주정뱅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중년에 접어들 때까지도 또래의 다른 남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음주에 관대하고 거친 삶이 보편적인 문화에서 성장한 터라 술을 가까이 두고 즐겼으나 ‘구제할 수 없는 술꾼’으로 손가락질받는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숙취에 시달려 다음날의 업무를 그르치는 사례가 늘어났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주변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며 욕설을 퍼붓고 멱살잡이를 하는 일도 많아졌다. 급기야 그런 드잡이가 주먹다짐으로 커지거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쓰러지며 여기저기 다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두피가 찢어지고 손가락과 손목이 부러졌으며 눈덩이가 붓거나 이마가 찢어지는 일이 사내에게는 하나의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그림=게티이미지]
[그림=게티이미지]

응급수술 했지만 영구 장애 판정

그날도 그랬다. 사내는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래도 겨우 집까지 찾아갔으나 현관에서 발을 헛디뎠다. 맑은 정신이면 발목을 삐어 며칠 동안 고생할 정도의 일이었으나 알콜에 취한 뇌는 몸을 제어하지 못했다. 사내는 크게 고꾸라져 머리를 부딪혔다. 그 소리에 가족이 나와 사내를 부축했고 ‘응급실에 가자’고 말했으나 사내는 완강히 거부했다. 머리를 세게 부딪혔으나 두피가 찢어지지 않았고 응급실에 가지 않겠다고 주장할 만큼 ‘멀쩡하게’ 보였기에 가족도 더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사내는 깜짝 놀랐다. 몸의 왼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다급하게 119에 신고했고 구급대의 도움을 받아 응급실을 방문했다.

그때부터 사내와 가족이 평소에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갔다. 의료진은 사내를 응급실 내부의 중환자구역에 수용했고 즉시 머리 CT를 촬영했다. CT를 확인한 의료진은 ‘외상성 경막하출혈(Traumatic subdural hematoma)’이란 생경한 병명을 말했다. 그리고는 ‘응급수술이 필요하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영구적인 장애가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선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내와 가족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말에 안도했고 나머지는 모두 ‘의사의 겁주기 허풍’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의료진의 선고는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사내는 생명을 구했다. 의식이 명료해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도 문제가 없었다. 다만 몸의 왼쪽을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보름 남짓한 시간이 흐르자 의료진은 ‘앞으로 평생토록 몸의 왼쪽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란 말과 함께 사내를 재활병원으로 전원시켰다.

 

2.

내가 응급실에서 사내를 마주한 것은 2년 후였다. 사내는 2년 동안 재활병원과 요양병원을 전전했으나 왼쪽 편마비(hemiplegia)는 전혀 호전하지 않았다. 사내는 우울증에 빠졌고 그러면서 상황이 점차 악화했다. 처음에는 힘겹게 걸을 수 있었으나 곧 휠체어에 의존했다. 다음에는 아예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온갖 문제가 발생했다. 욕창이 생기기 시작했고 요로감염과 폐렴이 번갈아 찾아왔다. 내가 사내를 마주했을 때는 반복된 요로감염으로 신부전이 발생했고 거기에 폐렴까지 겹쳐 패혈증(sepsis)으로 악화한 상황이었다. 환자는 여전히 의식이 명료했고 호흡곤란은 심하지 않아 아직 인공호흡기를 연결한 상황은 아니었으나 혈압이 떨어지고 심박수가 증가해서 패혈증 쇼크(septic shock)가 임박한, 아주 심각한 상태였다. 중심정맥관을 삽입하고 승압제 투여를 시작하며 환자와 보호자에게 ‘세균이 폐에 국한하지 않고 혈액을 따라 온 몸에 퍼져 독을 뿌리는 상황이며 신장기능도 나쁜 상태여서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지만 그럼에도 회복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는 말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는 매우 평범한 상황이다. 개인에게는 큰 비극이 틀림없으나 응급실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알콜의존증을 지닌 중년남자에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그런데 사내에게는 독특한 부분이 있었다. 가족과 사내가 주고받는 발음이 독특했다. 그들은 내가 경상도 방언 특유의 빠르고 억센 억양으로 말해도 정확하게 이해할 만큼 한국어가 유창했지만 그들의 발음과 억양은 무척 생경해서 북한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나 어울릴 듯했다. 그랬다. 그들은 재중동포 혹은 중국 출신 이주민일 가능성이 컸다.

 

3.

재중동포 혹은 중국 출신 이주민이란 사내의 정체성을 밝히면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 이야기가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내의 사례는 ‘알콜의존증이 있는 중년남자’에게 종종 일어나는 비극이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 소위 ‘토종한국인’이란 부류에게도 똑같이 발생한다. 사내의 정체성을 밝히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주면 대부분의 의료인은 ‘응급실에서 종종 마주하는 일이 아니냐?’며 시큰둥하게 말한다. 그러나 사내가 중국 출신인 것을 알려주면 반응이 달라진다. ‘역시 조선족과 중국인은 술을 좋아하고 미개하다’, ‘한국인이 낸 의료보험에 중국인이 뻔뻔스레 무임승차하는 사례다’, ‘이래서 외국인노동자를 함부로 받으면 안 된다’고 반응한다. 의료인이 아닌 사람의 반응도 비슷하다. 사내의 출신을 알려주지 않으면 ‘안타까운 일이네’, ‘현실이 드라마보다 훨씬 극적이네’ 같은 반응을 보이지만 중국 출신임을 밝히면 ‘역시 중국인은 거칠고 어리석다’, ‘우리 세금으로 만든 복지제도를 악용한다’ 같은 예민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4.

인간은 끝없이 이주하는 동물이다. 우리의 선조가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이래 인류는 끊임없이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이주했다. 엄밀히 따지면 토종이니 토착이니 하는 개념을 인간에게 적용하기 어렵다. 역사시대가 시작한 후의 한반도만 살펴봐도 그렇다.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주장하는 단군의 무리는 시베리아에서 이동한 이주민일 것이다. 처용 같은 극적인 사례를 말하지 않아도 삼국의 건국신화에는 외부에서 이주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세력이 등장한다. 발해유민, 고려 후기의 몽골인, 조선 초기의 여진족과 오늘날의 다문화가정까지 한반도에는 늘 누군가가 새롭게 이주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인도 일본과 중국, 중앙아시아, 하와이, 미국 본토로 ‘디아스포라’라 불러도 좋을 만큼 활발하게 이주했다.

사실 ‘순수한 혈통’은 일반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며 아프리카의 부시맨 혹은 호주의 어보리진처럼 오랫동안 외부와 단절되어 ‘순수한 혈통’을 유지한 공동체는 매우 취약할 뿐이다. 히틀러와 나치가 말하는 ‘아리안 혈통’은 허구의 개념이며 독일인이야말로 유럽에서 가장 많은 민족이 섞인 존재다.

 

이젠 편견 버리고 공생하며 살자

이런 고상하고 학문적인 논의를 떠나 현실적인 면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병원에서 마주하는 간병인만 봐도 재중동포와 중국 출신 이주민의 비중이 크다. 광역버스를 타고 수도권 외곽으로 가면 낯선 외모와 생경한 억양을 지닌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들 대부분은 우리가 필요에 따라 부른 존재이며 그들이 없으면 우리 사회를 유지하기 어렵다. 앞으로 그런 경향은 더욱 짙어질 것이다. 그들의 이주를 허용할 것이냐, 아니면 막을 것이냐 따위는 이제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을 어떻게 우리 사회에 조화롭게 수용할 것이냐, 그들과 우리가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냐, 이런 물음이 정말 고민해야 할 문제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편견을 버리고 서로를 이해하고 공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곽경훈

1978년 대구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분당제생병원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다. 『의사가 뭐라고』,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반항하는 의사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곽곽선생뎐』 등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