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의 역사를 만든 질병

기자명 더메디컬 편집부 (you@themedical.kr)
강병철 소아과 전문의, 번역가, 도서출판 [꿈꿀자유] 대표
강병철 소아과 전문의, 번역가, 도서출판 [꿈꿀자유] 대표

안개가 걷히며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눈에 들어왔다. 한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큰 도시는 익숙해지질 않는단 말이야.’ 바닷바람이 한바탕 뱃전을 휩쓸고 지나갔다. 황급히 옷깃을 여몄지만 여지없이 기침이 터져 나왔다. 으슬으슬 몸이 춥고 떨렸다. 하지만 그는 미소 지었다. 장작이 타닥타닥 타오르는 벽난로 앞에 앉아 뜨끈하게 데운 포도주를 한잔 들이키면 감기 따위는 금방 떨어지리라. 일은 그렇게 풀리지 않았다. 열이 계속 오르더니, 기침이 심해지고 눈이 충혈되었다. 사흘 뒤 얼굴을 시작으로 붉은 반점이 돋아나 온몸으로 퍼져 갔다.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지만 이런 병은 처음 본다고들 했다. 그때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이장이 들어왔다. 한스를 쳐다보는 그의 눈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이런 젠장, 홍역이잖아. 빨리들 집으로 돌아가. 옮으면 큰일이라고!”

1846년 3월, 페로 제도(Faroe Islands)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섬 토박이인 목수가 친구들을 만나러 코펜하겐에 나들이를 갔어요. 친구 중 하나는 홍역을 앓는다고 해서 병문안도 했지요. 홍역은 잠복기가 있기에, 그는 병이 옮았는지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폐 속에는 바이러스가 가득했습니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마다 홍역 바이러스가 쏟아져 나와 주변을 둥둥 떠다녔습니다.

 

10세기 페르시아 의사 알 라지가 환자를 보고 있다. 알 라지는 천연두와 홍역을 처음으로 구분했다. [그림=호세인 베자드]
10세기 페르시아 의사 알 라지가 환자를 보고 있다. 알 라지는 천연두와 홍역을 처음으로 구분했다. [그림=호세인 베자드]

한 번 감염되면 면역 생겨 평생 또 안 걸려

페로 제도는 북대서양 외딴곳에 흩어진 화산섬들입니다. 상대적으로 고립된 곳이지요. 여기서도 홍역이 유행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65년 전이었습니다. 당시 페로 제도는 세계에서 평균수명이 가장 긴 지역에 속했지만, 그래봐야 45세 정도였으니 이전 유행을 겪은 사람은 거의 남지 않았지요. 대부분의 주민이 홍역에 면역력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반면 홍역 바이러스는 인간 병원체 중에서도 가장 전염력이 높은 축에 듭니다. 이리를 양떼 속에 풀어놓은 셈이었지요. 불과 5개월 만에 주민 7782명 중 약 6000명이 홍역에 걸렸습니다. 사망자는 100명이 넘었고요. 하지만 주민들 중 가장 나이 많은 사람들, 그러니까 65년 전 홍역이 유행했을 때 감염된 사람들은 무사했습니다. 한번 앓은 사람은 면역이 생기고, 그 면역이 오래 유지된다는 뜻입니다. 아니나다를까, 유행은 이내 수그러들었습니다. 홍역을 앓은 사람이 점점 늘어나자 면역이 없는 사람, 즉 취약한 개체가 없어진 거지요. 바이러스는 새로운 희생자를 찾지 못하자 전파 사슬이 끊어져 저절로 사라졌습니다. 말하자면 그 자체의 폭발적인 전염력을 못 이겨, 마치 성냥을 긋듯 확 타오르고 이내 꺼진 겁니다.

홍역 바이러스는 기원전 3000년~8000년 사이에 인간을 감염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소위 ‘농업혁명’, 즉 인류가 처음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던 시기입니다. 이때 수많은 감염병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넘어왔습니다. 가축은 가축이 되기 전에 야생동물이었고, 종마다 각기 특유한 병원체를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홍역 바이러스와 개의 디스템퍼 바이러스, 소의 린더페스트 바이러스는 모두 모빌리바이러스라는 범주에 들어가므로, 홍역도 농업혁명 시기에 개나 소에서 인간으로 종간전파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전염병이 이처럼 농업혁명 때, 즉 약 1만년 전에 인간을 침범하기 시작했습니다. 매독처럼 비교적 새로운 질병이라고 해도 콜럼버스 이후에 생겨났으니 몇 백 년은 된 셈이지요. 새로운 병원체가 몸을 침범하면 우리 면역계는 아주 격렬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다가 수백 년간 서로 적응하면서 차차 질병의 증상이 변하지요. 대개 증상은 점점 가벼워지고 사망률도 낮아집니다. 대표적인 질병이 매독이지요. 1490년대 후반에 유럽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매독은 지금보다 훨씬 심한 증상을 나타내면서 급속히 진행되었습니다. 피부, 입속, 목속, 음부에 궤양이 생기면서 고열이 나고, 두통과 뼈 및 관절의 통증이 극심했으며 발진과 물집과 고름집이 어찌나 심한지 천연두를 방불케 했습니다. 오죽하면 천연두를 ‘소두창(smallpox)’, 매독을 ‘대두창(large pox)’라고 불렀을까요?

 

홍역에 걸린 어린이. 발병 4일째. [사진=Public Domain]
홍역에 걸린 어린이. 발병 4일째. [사진=Public Domain]

은사님이 알려준 감별법 “홍역은 추잡혀”

현재 홍역의 증상은 이렇습니다.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오면 10~12일간의 잠복기 후 고열, 기침, 콧물, 눈의 충혈과 눈물이 시작됩니다. 하루 이틀 더 지나면 특징적인 발진이 생기는데, 모발선 근처 얼굴에 납작한 홍반으로 시작해 몸 전체로 퍼집니다. 발진은 새빨갛고, 서로 합쳐지며, 발진이 생기면 대개 고열이 재발합니다. 사실 어린이에게 열이 나면서 붉은 발진이 돋는 질병은 아주 많습니다. 소아과학 교과서를 보면 어린이의 발진성 질환을 감별하는 요령이 길고 자세히 씌어 있지요. 시험 공부할 때 달달 외우느라 고생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예방접종 덕에 많은 발진성 질환이 모습을 감췄습니다. 제가 한창 환자를 보던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홍역이 돈 적이 있습니다. 의학은 책만으로 배울 수 없는 학문이에요. 교과서를 달달 외워도 홍역 환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헷갈리더라고요. 대학 은사님께 전화해 홍역을 빨리 감별하는 요령을 여쭤보았습니다. 그때 들려주신 말씀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은사님은 경상도 분이셨는데 단 한 마디로 홍역의 특징을 요약해주셨습니다. “홍역은 추접어!” 아하,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온몸이 붉은 반점으로 뒤덮인 채, 눈도 빨갛고, 얼굴은 눈물, 콧물, 침으로 범벅이 되어서 찾아왔습니다. 그야말로 홍역, 즉 ‘붉은 역병’이지요.

어쨌든 이게 홍역의 증상입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심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영어로 홍역을 뜻하는 ‘measles’라는 말은 중세에 ‘고름집’을 가리켰다고도 하고, 라틴어로 한센병(나병)을 가리키는 misellus에서 유래했다고도 합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비참하다(miserable)는 뜻의 라틴어 miser에 도달합니다. 홍역과 한센병과 성서의 미제레레(miserere, 시편 제51편)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이 모두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는 거지요. 과거에 홍역은 말도 못하게 비참한 질병이었다는 뜻입니다. 기록을 보면 빠르게 퍼지고 발진과 궤양을 일으키기 때문에 특히 천연두와 혼동되었던 모양입니다. 10세기 페르시아의 의사 알 라지(Muhammad ibn Zakariya al Razi)는 <천연두와 홍역>이라는 책을 써서 두 가지 병을 최초로 감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후 11세기와 12세기에는 홍역임이 분명한 기록들이 나타납니다. 이 시기 중세 유럽 도시가 성장했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홍역의 가장 큰 특징은 엄청난 전염력입니다. 홍역은 공기를 통해 또는 입이나 코 분비물과 직접 접촉을 통해 전염되는데, 환자 한 명이 평균 20명에게 질병을 퍼뜨립니다. 홍역 환자와 같은 공간에 있거나 하는 식으로 노출될 경우 전염될 확률이 무려 90%입니다. (물론 백신을 맞아서 면역이 생겼다면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홍역에 걸리면 앓다가 회복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홍역에 걸렸다고 죽나?’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현대의학이 발달하기 전 홍역의 사망률은 30퍼센트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다행히 회복된 사람은 면역이 생겨 평생 다시는 홍역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전염력이 높고 빨리 진행되는 질병이 어떤 집단에서 계속 명맥을 이어가려면 면역력이 없는, 소위 취약한 사람이 일정 수 이상 존재해야 합니다. 인구가 적으면 페로 제도에서처럼 확 타올랐다가 이내 유행이 잦아듭니다. 홍역의 경우 50만 명 이상의 취약한 인구가 필요한데, ‘도시’라는 사회 형태가 생겨나면서 이 정도 규모의 인구가 모여 살게 된 거지요. 이때부터 유럽과 아시아의 도시민들은 항상 홍역과 함께 살게 됩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친숙해진 단어지요? ‘엔데믹’, 즉 토착병이 된 겁니다. 그 전까지 홍역 바이러스는 소의 린더페스트 바이러스와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을 걸로 생각합니다. 인간을 감염시켰다가, 취약한 인구가 부족해지면 소의 몸으로 쏙 들어가 명맥을 유지하는 거지요. 이름하여 인수공통감염병입니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 도시가 성장하자 이제 사람만 감염시켜도 계속 자손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이제 홍역 바이러스는 린더페스트에서 완전 분리되어 인간만을 숙주로 삼는 별개의 병원체가 되었습니다. 병원체 중에서는 상당히 역사가 짧은 셈입니다.

 

홍역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사진=Public Domain]
홍역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사진=Public Domain]

하와이 왕·왕비, 영국 왔다 홍역으로 사망

이렇게 토착병이 되면 한 지역사회에 지속적으로 발생하므로 많은 사람이 면역을 갖추고 어느 정도 내성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홍역이란 병이 존재하지 않던 사회에 새로 유입되었을 때의 상황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습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발을 디딘 후 벌어진 일이 대표적이지요. 1529년 쿠바에서 홍역이 발생해 원주민의 3분의 2가 사망했습니다. 2년 후에는 온두라스 인구의 절반이 홍역으로 사망했고요. 전체적으로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범한 후 120년간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는 무려 90퍼센트가 줄었습니다. 문화와 언어마저 영원히 사라진 곳이 많았으니 그야말로 한 세계가 멸망하고 만 것입니다. 이들의 죽음은 학살과 노역과 굶주림으로 인한 경우도 많았지만, 주로 전염병 때문이었습니다.

1800년대에는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 홍역이 퍼져 토착화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외부와 격리된 섬 지방에서는 비슷한 참사가 잇따랐습니다. 페로 제도의 유행이 있은 지 2년 후, 하와이의 젊은 왕과 왕비가 조지 4세를 알현하기 위해 런던을 방문합니다. 몇 주가 지나지 않아 왕실 일행 전체가 홍역에 걸렸지요. 결국 왕과 왕비는 물론, 하와이 인구의 20%가 홍역으로 사망했습니다. 1875 년에는 피지의 국왕이 호주 시드니를 국빈 방문하고 돌아와 홍역을 퍼뜨렸습니다. 이 유행으로 피지 인구의 약 3 분의 1인 4만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린란드는 20세기 중반까지 홍역을 피할 수 있었지만, 1951년에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선원에 의해 유행이 시작됩니다. 몇 달 만에 그린란드 남부 인구 4262명 가운데 4257명이 홍역에 걸려 77명이 사망했습니다. 발병률은 99.9%로, 5명만 질병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전염성도 높고, 치명적인 질병의 기세를 꺾은 것은 역시 과학의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홍역은 다시 돌아올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유사과학과 불평등 때문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현재의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강병철

서울의대 출신의 소아과 전문의. 『툭하면 아픈 아이, 흔들리지 않고 키우기』, 『이토록 불편한 바이러스』를 썼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로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로 롯데출판문화대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