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욱의 영화 속 의학 : 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 2003)

기자명 더메디컬 편집부 (you@themedical.kr)
박지욱 신경과 전문의
박지욱 신경과 전문의

독일 통일 배경 영화 ‘굿바이 레닌’

영화 배경은 동독 붕괴와 독일의 통일 기간인 1990년 무렵입니다. 1989년 10월, 철의 장막 너머 동 베를린에 자유의 바람이 붑니다. 장벽을 거부하는 시위에 가담한 동독 청년 알렉스는 무자비한 진압으로 맞선 경찰에 끌려갑니다. 우연히 이를 목격한 모친은 그 자리에서 쓰러집니다. 모친은 누구보다도 열렬한 공산당원이었으니 큰 충격을 받을 만합니다. 병원으로 실려간 모친은 심장마비와 그로 인한 추가적 뇌손상으로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그 사이 역사의 큰 물줄기가 바뀝니다. 미국과 소련이 화해하고, 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 정부가 몰락하고, 베를린 장벽은 허물어지고, 동서독도 자유 왕래가 이루어집니다. 아울러 서구 자본주의 물결이 동독에 휘몰아쳐 동독인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입니다. 동독의 모범시민인 모친이 이 사태를 겪는다면 큰 충격을 받을 테니 아무것도 모른 채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이 다행이다 싶습니다.

하지만 모친은 8개월 만에 눈을 뜹니다. 상태가 불안정하여 다시 충격을 받으면 큰일 날 수도 있다고 의사는 주의를 줍니다. 열혈 당원인 모친이 천지개벽한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에 알렉스는 모친을 보호하기 위해 연극을 꾸밉니다. 다행히 모친은 침대에만 누워지내는 상태이기에 무대는 모친의 방이면 충분합니다. 사라진 동독 물건을 사오고, 오래된 가구를 구하고, 지인들에겐 여전히 동독인인 것처럼 행동하게 합니다. 모친이 뉴스를 원하자 비디오 편집 기술이 좋은 친구의 도움으로 ‘가짜 뉴스’를 만들어 보여줍니다.

어느 날 모친이 걷기 시작합니다. 혼자서 거리로 나가 ‘이케아’와 ‘BMW’를 보고 놀랍니다. 그리고 머리 위로 헬리콥터가 거대한 레닌의 동상을 싣고 갑니다(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입니다). 모친은 이 상황이 당황스럽습니다. 이제 알렉스의 연극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어야 하겠습니다. 알렉스는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요?

 

‘굿바이 레닌’ 영화 포스터.
‘굿바이 레닌’ 영화 포스터.

2년 사이 뇌졸중 네 번 찾아와

영화 배경은 1990년 무렵이지만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은 75년 전인 1924년 1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마침 올해가 100주년입니다). 레닌은 비교적 젊은 나이인 53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사인(死因)은 뇌졸중입니다. 1922년 5월에 뇌졸중에 처음 걸렸고 이후로 1년 반을 투병했습니다.

레닌은 어릴 때부터 유난히 머리가 커서 잘 넘어졌다고 합니다. 젊어서는 장티푸스, 독감, 치통, 피부병, 편두통, 복통을 앓았습니다. 장년기에 이르러서는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럽고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진통제와 브롬화칼륨(KBr)과 바르비튜레이트(barbiturate) 같은 신경안정제들을 먹었습니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이런 약들의 장기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을 테지요.

그래서인가요?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린 혁명 지도자인 레닌의 판단력이 갈수록 이상해집니다. 레닌이 환자로 지목하면 지체 높은 정치국원들도 여지없이 강제로 요양지로 가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레닌이 정신병 진단을 붙이면 의사 진단 없이도 정신병원에 갇혔습니다. 뛰어난 지략가이자 열정적인 지도자로 추앙받은 레닌이 어느 순간부터 판단력마저 흐린 독재자가 된 것이지요.

하는 수 없이 1921년에 트로츠키와 스탈린을 비롯한 정치국원들이 뜻을 모아 레닌을 시골로 보내 요양하게 합니다. 이반 파블로프(Ivan Petrovich Pavlov; 1849~1936)를 포함한 명의들을 불러 레닌을 진료합니다. 의사들은 레닌이 매독(나중에 했던 검사에서는 음성)에 걸렸다고도, 신경쇠약을 앓는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에서 초빙된 클렘페러 교수(Georg Klemperer; 1865~1946)는 전혀 다른 진단을 내립니다. 레닌의 몸 속에 박힌 총알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레닌은 3년 전인 1918년 8월 모스크바에서 저격을 당했습니다. 레닌의 명령으로 황실 가족이 처형된(본지 [칼럼] 러시아 황태자의 혈우병, 제국의 몰락 단초 됐을까 참고) 직후였습니다. 총알 두 발이 몸에 박혔는데(우측 쇄골과 흉골 만나는 바로 위 그리고 좌측 어깨) 전신 상태가 나빠, 의사들은 수술을 미룹니다. 하지만 감염 없이 3주 만에 회복합니다. 이때부터 레닌은 대숙청 작업을 시작해 소련 전역에 피바람이 불게 됩니다.

3년 동안 총알은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독일 의사가 레닌 몸 속에 박힌 총알에서 흘러나온 ‘납’이 레닌을 중독시킨다고 주장합니다. 당시만 해도 독일의 과학 기술 의학 수준은 세계 최고였으니까 감히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웠을까요? 소련 의사들은 일단 손쉽게 제거할 수 있는 오른쪽 목에 박힌 총알을 빼냅니다. 이 때가 1922년 4월입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수술 한 달 만인 5월에 레닌은 첫 번째 뇌졸중에 걸립니다. 오른쪽 반신마비와 실어증이 생기지요(전형적인 좌뇌의 문제입니다). 큰 충격을 받은 레닌은 신병을 비관해 죽을 생각도 했지만 병세가 호전되어 10월 업무에 복귀합니다. 하지만 12월에 두 번째 뇌졸중이 생깁니다. 병세는 훨씬 나빠졌지만 그래도 이겨내고 회복이 시작됩니다. 이듬해인 1923년 3월에 세 번째 뇌졸중이 왔고 다시 나아지다가 마침내 1924년 1월에 네 번째 뇌졸중으로 쓰러집니다. 치명적이어서 54세 생일을 며칠 앞 둔 1924년 1월 21일 레닌은 숨을 거둡니다.

다음 날에 있은 부검에서는 동맥경화증, 동맥 막힘, 뇌경색이 확인됩니다. 레닌은 담배도 안 피우고, 나이도 비교적 젊고, 고혈압도 없었는데 왜 뇌졸중이 네 번이나 왔는지는 미스테리입니다. 역사는 이 정도로 레닌의 마지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영화 ‘굿바이 레닌’은 베를린에 자유의 바람이 불어온 1990년대 동독이 무대다. 열렬한 공산당원인 모친이 천지개벽한 사실을 알고 충격 받을까봐 ‘가짜뉴스’를 만드는 아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모친은 거리에서 거대한 레닌의 동상이 철거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사진은 2016년 우크라이나에서 레닌동상이 해체되고 있는 모습. [사진=셔터스톡]
영화 ‘굿바이 레닌’은 베를린에 자유의 바람이 불어온 1990년대 동독이 무대다. 열렬한 공산당원인 모친이 천지개벽한 사실을 알고 충격 받을까봐 ‘가짜뉴스’를 만드는 아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모친은 거리에서 거대한 레닌의 동상이 철거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사진은 2016년 우크라이나에서 레닌동상이 해체되고 있는 모습. [사진=셔터스톡]

레닌 뇌 연구 위해 연구소도 새로 세워

이듬해인 1925년 초, 독일의 저명한 뇌과학자 오스카 포그트(Oskar Vogt; 1870~1959) 앞으로 소련 정부의 공식 초청장이 날아옵니다. 모스크바로 와서 ‘레닌의 뇌’를 연구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독일과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적대국이었지만 새로 출범한 소련 정부는 양국 관계 개선도 도모하고, 소련의 뇌 연구 현대화도 필요해서 포그트를 초청한 것입니다. 포그트는 수락하고 역시 신경과학자인 아내 세실(Cécile Vogt-Mugnier; 1875~1962)과 함께 소련으로 갑니다. 그리고 모스크바에 ‘레닌의 뇌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연구소를 세워 초대 소장에 취임합니다.

모스크바는 왜 죽은 레닌의 뇌에 그렇게 열성이었을까요? 레닌의 뛰어난 정치력을 뒷받침할 특출한 뇌 구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거의 국보나 다름없었는지 레닌의 뇌는 파라핀으로 보존 처리되어 철제 금고 속에 넣어둔 채 군인들이 경비를 섰다고 합니다. 포그트는 레닌의 뇌를 쪼개어 3100개 정도의 슬라이스 표본으로 만듭니다.

좌뇌 반구는 뇌졸중으로 심하게 망가졌지만 우뇌 반구는 거의 멀쩡했습니다. 포그트는 레닌 뇌피질의 특정 세포층에 유달리 커다란 피라미드세포(pyramidal cell)가 많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포그트는 이 부분을 레닌의 뇌가 비범하다는 증거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레닌이 연상적 사고(associative thinking)가 뛰어난 것으로 해석합니다. 당시로는 피라미드세포와 인지기능이 관련된 것으로 생각했기에 타당한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이 연구는 학계에서는 두고두고 잘못된 연구라고 지적을 받습니다.

포그트 부부는 1930년 귀국했고, 이듬해 베를린 외곽의 부흐(Buch)에 카이저빌헬름 뇌 연구소(Kaiser Institut für Hirnforschung)를 세워 연구를 계속합니다. 하지만 나치즘이 발흥하고, 이를 못마땅히 여긴 포그트는 나치의 눈엣가시가 됩니다. 결국 연구소에서 내쫓깁니다. 부부는 슈바르츠발트(黑林) 지역의 노이슈타트로 옮겨 1937년 개인 연구소를 세웁니다. 지역민들은 그 연구소를 ‘뇌의 성’으로 불렀다는데 어째 느낌이 좀 으스스하네요. 포그트 부부는 말년까지 정신의 (뇌)생물학적 근거를 찾는 일에 몰두합니다. 그가 내린 결론 중에는 ‘정신적인 활동이 뇌의 노화 속도를 줄인다’도 있습니다. 이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지요?

영화 속 모친처럼 레닌도 생애의 마지막 시간을 병상에서 보냅니다. 레닌을 대신해 권력을 잡은 스탈린은 큰 충격을 받으면 안 된다며 레닌이 읽을 신문을 따로 편집 제작해 방에 넣어줄 정도로 세상과 단절시킵니다. 영화 내용과 비슷한 대목입니다. 감독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았을까요? 여하튼 모친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효자 아들의 어설픈 연극은 우리를 웃기고 울립니다. 그리고 놀랄만한 반전도 있으니 꼭 한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레닌이 죽자 소련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레닌그라드로 이름을 바꿉니다. 하지만 소련이 몰락하면서 원래 이름을 되찾습니다. 이 도시에는 지금도 레닌 동상이 98년 동안 서 있습니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는 레닌 묘가 있습니다. 소련 시절에 성역(聖域)으로 만든 곳입니다. 무덤 안으로 들어가 전시된 레닌을 볼 수도 있습니다. 레닌 주검은 방부 처리되어 방탄 유리로 가로막은 공간에 온전히 누워있습니다. 온전하다는 표현은 정정합니다. 주검에는 총알 하나는 남아 있고 뇌는 없으니 말입니다.

 


◇박지욱

제주에 사는 신경과 개원의이자 작가다. 의학과 문학, 역사의 접점을 찾고 있다. 의학과 문화를 엮는 일을 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최초의 메디컬티스트(medicultist)라 주장한다. 『이름들의 인문학』(반니), 『진료실에 숨은 의학의 역사』(휴머니스트) 등 5권의 책을 펴냈으며 다양한 매체와 방송에서 메디컬티스트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참고문헌

1) 메스를 잡다, 아르놀트 판 더 라르 지음, 제효영 옮김, 을유문화사, 2018년.

2) 두뇌의 비밀을 찾아서, 페터 뒤베케 지음, 이미옥 옮김, 모티브, 2005년.

3) 역사를 바꾼 31명의 별난 환자들, 리처드 고든 지음, 김철중 옮김, 에디터, 2001년.

4) https://www.hoover.org/sites/default/files/uploads/documents/Lenins_Brain_Paul_Gregory_24.pdf

5) https://www.whonamedit.com/doctor.cfm/997.html

6) https://www.nytimes.com/2012/05/08/health/research/lenins-death-remains-a-mystery-for-doctors.html